♧1956년 09월 28일 장면 부통령 저격사건
장면 부통령 암살미수 저격사건의 배후자 이익흥 등 6명의 피고인에 대한 첫 공판이1960년 7월 27일 장면 부통령 암살미수 저격사건의 배후자 이익흥 등 6명의 피고인에 대한 첫 공판이 열렸다.
1956년 9월 28일 오후2시38분경 민주당 전당대회에 참석한 장면 부통령이 민주당원 김상붕이 쏜 총탄에 맞아 왼손을 다쳤다. 경찰은 사건의 배후인물로 민주당 서울 성동지구당 간부 최훈을 체포했으나 그 이상의 배후는 밝혀내지 못했다.
그후 1957년 1월 1일 최훈의 부인이 前성동경찰서 사찰주임 이덕신을 배후인물로 지목하자 검찰은 이덕신도 구속했다. 최훈은 법정에서 "치안국장 김종원이 배후로 생각한다"고 폭로했으나 김종원은 이를 완강히 부인했다. 국회조사단이 조사한 결과 치안국 특수정보과장 장영복 등 경찰간부가 배후조종한 사실을 탐지해냈으나 이 또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4년 뒤 4·19혁명이 성공하자 김종원은 법정에 불려나왔고 그는 "장면박사 저격사건은 전 서울시장 임흥순이 지시했다"고 폭로함으로써 사건의 배후가 백일하에 드러났다. 즉 사건 40일 전 자유당 2인자인 이기붕이 임흥순에게, 임은 내무장관 이익흥에게, 이는 김종원에게, 김은 장역복에게, 장은 박사일 중앙사찰분실장에게, 박은 오충환 시경사찰과장에게, 오는 이덕신에게 범행을 차례로 지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1864년 제1인터내셔널(국제노동자협회) 창립
마르크스의 이름이 독일의 서기로 기록되어 있는 제1인터내셔널 카드.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각국의 노동자 대표들이 1864년 9월 28일 영국 런던에 모여 국제노동자협회(약칭-제1인터내셔널) 창립을 결의했다.
2년전 런던 만국박람회에 참석한 프랑스 노동자들이 영국 노동자들을 만나 국제조직 건설을 제의한 데 따른 것이다. 이날 회의에서는 32명의 임시위원을 선출했다. 독일 대표 칼 마르크스는 협회의 `창립선언문`과 `잠정규약`을 초안했다. 산업 부르조아지의 착취에 눌려 비참한 생활을 해 오던 각국의 노동자들은 이날의 협회창립을 환영했다.
제1인터내셔널은 1876년 해체됐다 1889년 재건돼 제2인터내셔널로 불렸다.
여러분들은 9월 28일이 무슨 날인지 아시나요?
바로 유관순 열사가 3·1운동에 참여하고 일제의 폭거에 끝까지 저항하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한 날입니다.
▲ 유관순 열사 순국
올해는 광복 75년이자 유관순 열사가 순국한지 100주년이 되는 해인데요. 이번 포스트에서는 유관순 열사의 생애를 살펴보고 그 분이 3·1운동을 통해 추구했던 가치가 무엇이었는지 돌아보고자 합니다.
유관순 열사와 3·1운동
유관순 열사의 아버지는 향촌 유지들과 교회를 세우고 구국운동과 민중 계몽운동을 했습니다. 유관순 열사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민족의식을 키웠습니다. 이화학당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던 1919년.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과 폭정으로 민중들의 망국에 대한 서러움과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누적된 상황 속에서 3·1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납니다. 신식 교육을 받으면서 민족의식을 고취해온 유관순 열사를 비롯한 이화학당 학생들은 부당한 민족현실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조선총독부는 학생들의 열의를 짓밟으려는 듯 이화학당에 강제로 휴교령을 내립니다. 그럼에도 열사는 고향인 천안으로 돌아가서도 독립선언서를 들고 돌아다니며 만세운동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4월 1일, 천안 아우내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아우내 장터에는 장꾼과 시위 군중이 모여들었습니다. 3천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커다란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이를 가만히 두고 볼 일제가 아니었습니다. 일본 헌병은 칼을 휘두르며 만세운동을 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유관순 열사의 부모님이 목숨을 잃었고, 열사는 아버지의 시신을 업고 일본 헌병들에게 항의했습니다. 그러다 독립만세운동의 주모자로 체포되어 공주 검사국으로 끌려갔습니다.
열사는 징역 7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감금되었습니다. 옥중에서도 열사의 독립의지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함께 수감되었던 사람들과 함께 끊임없이 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그러나 헌병대의 가혹한 고문으로 1920년 9월 28일에 순국하고 말았습니다. 그 때 열사의 나이는 18세였습니다.
▲ 동아일보 1946년 2월 15일자 1면, “남조선 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 성립“ (출처: 동아일보)
유관순 열사가 대중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입니다. 1946년 2월, 이승만, 김구, 김규식 등으로 구성된 대한민국대표민주의원은 3·1운동의 뜻을 이어 3월 1일을 경축일로 지정하고 대의에 순사한 애국열사를 기념하기로 의결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여성이자 학생으로서 독립운동에 투신한 유관순 열사가 주목을 받아 오늘날 우리가 유관순 열사를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 알게 된 것입니다.
“팔도강산 어딜 가면 감옥이 아니겠느냐.”
▲ 유관순 열사 동상 (출처: 천안시 유관순열사기념관)
18세 여학생이었던 유관순 열사. 그녀의 마음에 어떤 신념이 있었기에 독립운동에 투신할 수 있었던 걸까요? 열사는 공주감옥에 수감되어있을 때 징역에 대한 항소 권유를 받았는데 그 때 “팔도강산 어딜 가면 감옥이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열사에게 장소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일제의 강압과 공포에 굴하지 않고, 있는 그 자리에서 독립을 열망하는 국민이었습니다.
올해는 유관순 열사의 순국 95주기입니다. 유관순 열사의 고향인 천안시와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는 22일에 유관순열사추모각에서 추모제를 엽니다. 치열하게 투쟁했던 유관순 열사의 의지가 현재까지 기억되는 것은 우리 후손에게 큰 의미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이와 신분,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오직 신념대로 행동했던 유관순 열사의 모습은 우리 후손들의 본보기입니다.
▶2009년 설매리 여사 별세
▶2000년 피에르 트뤼도 캐나다 전 총리 사망
▶1999년 현대남녀농구선수단, 평양서 북한농구팀과 친선경기
▶1998년 마크 맥과이어 미 메이저리그 사상 시즌 70개 최다 홈런기록 수립
▶1998년 박찬호, 메이저리그 진출 3년만에 시즌 15승 달성
▶1997년 한국축구, 월드컵 본선 4회 연속진출
▶1994년 에스토니아 여객선 침몰 대참사 - 900명 이상 몰사
▶1992년 노태우 대통령, 한국 대통령으로 첫 북경 방문해 한중정상회담
▶1990년 전쟁기념관 기공
▶1989년 마르코스 전 필리핀 대통령 망명지 하와이서 사망
▶1982년 한강종합개발사업 착공
▶1978년 교황 바오로1세 서거
▶1977년 일본 적군파, 일본항공(JAL)기 납치
▶1977년 허담 북한 외무장관 미국 방문
▶1970년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 심장병으로 사망
▶1970년 산체스 엘살바도르 대통령 방한
▶1969년 서독 총선거. 기민당 신승
▶1968년 북악 스카이웨이 개통
▶1966년 아르헨티나 반(反)영국 폭동
▶1966년 유엔총회서 인도네시아의 UN복귀를 발표
▶1965년 필리핀 타알화산 폭발, 약2000명 사망
▶1963년 도미니카의 후앙 보슈 전(前)대통령은 쿠데타로 실각 후 망명
▶1963년 미국 처음으로 원자력 이용한 인공위성 발사
▶1963년 프랑스-독일협정. 아프리카대륙에서의 양국 세력 확정
▶1963년 영국-인도네시아군, 사라와크에서 무력충돌
▶1961년 시리아서 쿠데타, 통일아랍공화국서 이탈
▶1958년 프랑스 제5공화국 헌법 국민투표에 의해 승인
▶1950년 정부, 서울 환도
▶1950년 산돌 손양원 목사 순교
▶1950년 나토(NATO)공동방위군 창설
▶1950년 이승만대통령, 38선이북 진격 명령
▶1949년 미국, 대외군사원조법 성립
▶1948년 정부, 남북교역 중지 선언
▶1945년 현준혁 암살
▶1939년 독일-소련 우호조약 조인(폴란드분할점령 결정)
▶1937년 국제연맹 총회, 일본 비난결의를 만장일치로 채택
▶1920년 유관순 순국
▶1902년 자연주의 문학운동의 창시자, `목로주점`의 에밀 졸라 사망
▶1895년 프랑스 생물학자 파스퇴르 사망
▶1885년 한성전보총국 개국 한성-인천 최초 전신시설 개통
▶1885년 우리나라 최초의 전신선, 서울-인천 간 가설
▶1864년 제1인터내셔널(국제노동자협회) 창립
▶1850년 미국, 해군 및 상선에서 태형을 폐지
▶1841년 프랑스의 정치가 클레망소 출생
▶1825년 콜롬비아의 3선 대통령 누녜스 출생
▶1803년 프랑스 소설가 메리메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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