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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오늘의 역사(12월3일)

by 혼자투어 2020.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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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6년 12월 3일 이만희 감독, 영화 ‘만추’ 개봉

이만희(1931~1975)는 1960년대 한국 장르영화의 달인이자 충무로의 보헤미안이었다.

15년 동안 50편의 영화를 양산하면서도 작품마다 자기 색깔을 놓치지 않은 거의 유일한 감독이었다.

이만희가 연출력과 흥행력에서 인정을 받은 첫 영화는 1962년 8월 9일 개봉한 ‘다이알 112를 돌려라’였다.

당시로는 그리 대중적이지 않았던 스릴러 장르의 이 영화로 이만희는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인정받은 것은 물론 1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끌어들여 상업성까지 인정받았다.

이만희를 당대 최고의 흥행 감독으로 끌어올린 것은 ‘돌아오지 않는 해병’의 성공이었다.

1963년 4월 11일 국도극장에서 개봉한 ‘돌아오지 않는 해병’은 전쟁영화로는 최초로 20만 관객 동원이라는 기록을 세워 영화계를 놀라게 했으며 오늘날에는 한국 전쟁영화의 한 획을 긋는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이런 성공의 기쁨도 잠시뿐, 이듬해 시련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고편이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던 ‘7인의 여포로’가 반공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1964년 12월 18일 구속영장이 청구된 것이다.

북한 인민군에게 잡힌 국군 간호장교 포로 7명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에서 북한군이 국군보다 더 좋은 옷차림을 하고 있고 또 국군이 바보스럽게 묘사되어 북한이 더 우월한 체제로 보이게 했다는 것이다.

다행히 구속영장은 기각되고 필름에 대해서만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되었다.

그러나 중앙정보부가 나서 이만희의 구속을 주도하는 바람에 이만희는 결국 1965년 2월 5일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다.

이만희는 재판 중에도 ‘7인의 여포로’ 내용의 일부를 삭제하고 보충 촬영을 통해 재편집한 뒤 ‘돌아온 여군’으로 제목을 바꿔 1965년 8월 27일 개봉했다.

그러나 당국의 검열로 이미 누더기가 된 영화의 흥행 결과는 참혹했다.

그렇다고 영화에 대한 열정이 수그러들 이만희가 아니었다.

자신의 대표작이자 한국 영화사를 빛낸 주옥 같은 작품 중 하나로 손꼽히는 ‘만추’를 1966년 12월 3일 명보극장에서 개봉한 것이다

3일 동안의 특별휴가를 얻어 어머니 성묘를 가는 살인 복역수 문정숙과 위폐범으로 지명수배 되어 쫓기는 신성일 두 사람이 펼치는 인생의 불안과 고독 그리고 사랑을 그린 ‘만추’는 촬영과 녹음이 보름만에 완성되고 출연진이라야 신성일과 문정숙 두 사람이 사실상 전부였는데도 20만 명의 관객을 끌어들여 이만희 영화의 정점을 찍었다.

‘만추’는 각종 영화상을 휩쓸었다.
베를린 영화제에도 출품되고 몇 편의
영화로도 리메이크되었다.

1975년 김기영 감독의 ‘육체의 약속’(김지미 주연), 1982년 김수용 감독의 ‘만추’(김혜자 주연), 2011년 김태용 감독의 ‘만추’(현빈·탕웨이 주연)로 국내에서 세 차례에 걸쳐 리메이크되었으며 일본에서도 1972년 ‘약속’이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되어 그해 일본영화 베스트5에 올랐다.

‘만추’는 이처럼 한국 영화의 예술성을 한층 높인 걸작으로 꼽히지만 원판 필름은 물론 지방 상영을 위해 복사한 필름도,
외국에 수출한 필름도 사라지고 없어 한국 영화계의 큰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2010년 '창고극장' 설립, 원로 연극인 이원경씨 별세
▶2010년 생태학 연구의 선구자 김준민 교수 별세
▶2009년 포천 국방과학연구소 폭발 사고
▶2009년 케이블TV 컴캐스트, NBC 인수
▶2008년 태국 시위대, 농성 해제
▶2000년 한국 천주교, 과거사 반성 문건 `쇄신과 화해` 발표

▶1998년 국내, B형간염 치료제 `헤파가드` 개발

▶1997년 정부와 국제통화기금(IMF),
▶총550억 달러의 긴급자금지원에 합의
▶1997년 대인지뢰 금지협약 서명
▶1995년 전두환 전대통령 구속

▶1992년 유엔안보리, 소말리아 군사개입결의안 채택

▶1991년 일본 중의원, 자위대의 유엔평화유지활동(PKO) 협력법안 가결
▶1990년 방글라데시 대통령 에르샤드 사임
▶1987년 중부고속도로 개통

▶1985년 10차 남북적십자본회담 서울개최
▶1984년 인도 보팔시 유독가스 유출 대참사 발생
▶1983년 부산 다대포 앞바다 무장간첩선 격침
▶1983년 백악관 콘크리트방벽 설치
▶1981년 시스케이국 독립
▶1981년교대와 국립사대 통합발표
▶1980년 부산대. 동래서 가야시대의 금동관 발굴
▶1978년 캄보디아의 반(反) 폴 포트세력이 캄보디아 구국민족통일전선을 결성
▶1973년 파이오니어 10호 최초로 목성 탐사
▶1970년 북한 박성구 소좌. 미그15기 몰고 귀순
▶1967년 남아공 버나드 박사. 세계최초로 심장이식수술 성공


▶1964년 남산 자유센터 개관
▶1962년 쿠바의 소련폭격기들 철수 개시
▶1961년 미국 네바다 사막서 지하 핵실험
▶1960년 일본-영국 문화협정 조인
▶1959년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 유럽-아시아 방문 등정
▶1956년 영국-프랑스, 이집트로 부터 즉시 철수 발표
▶1952년 유엔총회. 한국전포로 중립지대 인도안 가결
▶1948년 상해부근에서 피난민들이 탄 배가 폭발침몰. 3천9백20명 사망
▶1946년 미국-영국 군사동맹 체결
▶1943년 미국-영국-소련 3거두 테헤란선언
▶1937년 헝가리 시인 요제프 사망
▶1931년 스페인 부르봉왕조 멸망
▶1929년 서울학생독립운동 사건 발발
▶1921년 조선어연구회 조직(후에 한글학회로 개칭)

▶1920년 청록파 시인 조지훈 출생
▶1919년 인상파 화가 르누아르 사망
▶1912년 발칸제국과 터어키 휴전(터어키 불가리아 세르비아 3국간 휴전조약 승인).
▶1908년 기독교청년회관(YMCA) 개관식 거행
▶1904년 이준 나유석 윤효정 등 공진회 설립
▶1894년 영국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사망
▶1884년 인도의 초대 대통령 프라사드 출생
▶1879년 에디슨 전등 발명
▶1869년 초대 부통령 이시영 출생
▶1779년 독일 작가 브라이팅거 사망
▶1753년 영국의 발명가 크럼프턴 출생. 뮬 정방기(精紡機) 발명
▶1522년 1622년 3월 12일 성인으로 추증된 근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선교자 하비에르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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